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만주 전략 공세 작전 (문단 편집) == 소련군의 딜레마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leksandr_Vasilevsky_in_Port_Arthur%2C_China_%281945%29.jpg]] 1945년 대일전 승리 후 [[러일전쟁]]의 격전장이었던 [[뤼순]]을 방문한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하지만 관동군이 아무리 약체라도 만주국군까지 합하면 100만에 이르는 머릿수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소련군은 45년의 관동군이 1,115대의 전차와 5,360문의 화포, 1,800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고, 만주국군까지 합쳐 8개 사단, 7개 기병사단이 추가되었다고 추산했다. 이에 따라 만주 국경 전체의 소련군과 관동군 비율은 병력은 1.2:1, 일본군만 따지면 2.2:1이 되고 전차와 포의 경우 4.8:1, 항공기는 2:1의 비율이 된다. 소련군이 숫적 우위에 있긴 하지만 기갑 전력을 제외하고는 그렇게까지는 압도적인 수적 우위는 아니다. 게다가 소련군 만큼은 아니지만 관동군 또한 야전군 직할로 무시 못할 만한 포병 전력을 거느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창설된 30년대부터 소련과의 충돌 상황을 상정하고 위에서 썼다시피 대대적인 국경 지대 방어선과 요새 건축이 소만 국경에 이루어진 상태였다. 무엇보다 [[독소전쟁]]에서 3,000만 명에 육박하는 엄청난 인적 손실을 입은 소련으로서는 관동군과의 싸움에서 다시 큰 피해가 발생한다면 더욱 힘든 세월을 보내야 할 판국이었다. 또한 [[만주]]의 지형 또한 소련군의 공격을 어렵게 하는 한 요소가 되었다. 만주 벌판이란 말에 익숙해 만주가 그저 거대한 평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만주의 주위 삼면은 산과 삼림으로 에워싸여 있어 통행이 어려운 곳이다. 특히 서쪽의 다싱안링 산맥은 해발 1,900m에 이르고, 산 너머 내몽골 지역은 광활한 반사막 지대이다. 몇 안 되는 고개도 늪지인 데다가 [[장마]]철이 오면 더 심해져서 습도, 늪, 진흙으로 작전을 펼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통행의 어려움에 더해서 만주의 엄청난 크기는 잠재적인 공격 측의 기를 꺾어 놓는다. 북쪽 끝에서 황해까지의 거리는 [[노르망디]]에서 [[민스크]]까지의 거리였다. 관동군 사령부는 이 험한 지형을 이용, 인적 물적 열세를 지형적 이점으로 상쇄해 소련군을 격퇴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군이 마냥 물량만으로 관동군을 이기기에는 감수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